넓은 바다/동방의 금수강산

[진주] 내일로 I - 만 스물 셋의 첫 전국일주, 2011년 8월 (19)



진주성의 북문인 공북문. 진양호공원에서부터 버스타고 왔다. 사실 진주 이곳저곳에서 시내 중심가 방향 버스를 타면 웬만하면 다 진주성 주변으로 가는것 같다. 그냥 여기도 원래 옛 성 중심으로 도시가 퍼지면서 발전한거다.



진주대첩을 이끈 충무공 김시습 장군 동상. 사람들이 너무 모르는 부분인데 충무공은 이순신 제독에게만 붙여진 시호가 아니라 원래 무신에게 하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시호였고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 아홉 분이 받았다. 임진왜란 시기의 장수 중에는 이순신 제독과 더불어 김시습 장군까지 두 분.


영남포정사. 다른 이름으로는 망미루. 조선 말기 경상남도 감영의 정문이자 일제강점기 경남도청의 정문이었다.



수령 이하는 말에서 내리랍신다.


비석들을 한데 모아놓은 진주성 비석군.


성곽이 어느 정도 잘 보존되어 있고 나름 복원도 계속 하고 있고 그 성곽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랜드마크 관광지로서, 또 진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굉장히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매년 가을 진주남강유등축제도 열린다.


북장대. 다른 이름으로는 진남루, 공북루. 실제 안에는 진남루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왜란 때 병력지휘소로서 기능했던 누각 건물이고 또 전쟁 중에 불타 없어졌지만 광해군 시기에 중건됨.


진주성 주변의 남성동, 본성동, 중안동 일대 '진주 시내' 모습. 진주의 원도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곽 따라 걷는 둘레길의 분위기가 고즈넉하니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쾌청한 여름날에 시원한 바람 맞으며 나무 사이로 천천히 걷는 것 만큼 기분 좋아지는 일이 또 있을까.




포루. 여러 군데가 있었겠지만 여기 하나만 남아있다.


사실은 이것도 1969년도에 복원한 것.


창렬사.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선열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액 사당이었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이후로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의 순국선열들이 포함되어 함께 모시고 있다.


진주 3.1 독립운동 기념비.


국립진주박물관. 원래 어려서부터 박물관 덕후라 오히려 어른되고서 관심이 없어졌다. 내 돈 내야 돼서? 여기 이런 규모와 수준이 있는 국립박물관이 있다니 괜히 기쁘고 설레기 시작했다! 정문으로 돌아서 들어가야지~


박물관 정문. 그런데 이 날은 월요일, 정기휴관일이었다. Scheiße......



박물관 광장.


공터에서 무슨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남강. 그리고 건너편 망경동 강변둔치 풍경.



얼핏 보이는 촉석루와 진주교.



쌍충각과 그 안의 쌍충사적비. 왜란 당시 전사한 의병장 제말 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 장군을 기리는 비석이다.


뭔가 국립현충원스러운 포스가 풍기는 여기는 뭘까.


바로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임진(1592)년의 진주대첩과 계사(1593)년의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7만여 민·관·군 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1987년에 조성한 제단이다.


호국종각.


여기가 바로 진주성의 하이라이트이자 진주의 간판 랜드마크인 촉석루. '강 가운데 바위가 솟아나 있다'는 뜻이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동반자살을 할 때 일본군의 승전 연회가 열렸다고 하는 곳이다.


남장대라는 현판도 걸려있다. 성 북쪽의 북장대와 대칭되는 남쪽 방향 전투지휘소이기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남강 풍경이 끝내준다. 그런데 강 건너편 망경동에서 바라보는 촉석루의 모습도 장난아니게 멋지다고 한다.


평시에는 양반들이 경치를 보면서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그런지 뭔가 걸려있는 글이 굉장히 많다.




영남제일형상. 영남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었다는 당대의 인증(?)인가보다. 내가 경상도 구석구석을 다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내내 진주는 영남 최고의 대도시였고 유흥문화가 발달했기로 전국구로 유명했던 곳이라 대도시였다니까 좀 놀줄 안다는 양반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충분히 받을만 했겠다 싶다. 그런데 내가 봐도 여기 경관이 정말 멋지긴 멋지다.


그 옆 샛길로 내려가면 나오는 바위 절벽. 논개가 여기서 뛰어내렸다 해서 의암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의기논개지문. 의로운 기생 논개를 기린 비석이다.


여기서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우고 왜장을 꽉 껴안은 채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사실 역사적인 실제 여부는 불확실하다.


의암에서 바라본 진주교.


성의 동문인 촉석문으로 나간다.


성 밖에서 바라본 촉석문.


논개라는 시의 시비.


진주시향토민속관과 그 앞의 묘한 느낌의 조형물.


진주교를 통해서 (구) 진주역 쪽으로 걸어갔다.


진주교에서 바라본 진주성 촉석문. 강을 따라 문 앞으로 뻗은 논개길에는 장어집이 유독 많았다.


강남동으로 넘어오니 논개 가락지날 축제 플래카드가 보였다. 아까 진주성 공터에서 준비하던 행사가 이거였구나.


느닷없이 마주친, 프랑스 분위기(?)가 나는 벽화. 물론 이때까진 아직 프랑스에 못 가봤으나...


12시 반, 점심 먹을 시간이다.


어려서부터 물냉면 매니아였던 나, 진주냉면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좀 일찍 알게됐다. 원래 북한에서는 조선의 양대 '랭면'을 평양과 진주라고 한다고. 함흥은 쳐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언젠가 진주에 가서 꼭 먹어봐야지 했던걸 이번 기회에 먹을 수 있게 됐다. 진주역으로 가는 동선과 진주냉면 식당의 계보를 따져서 이 곳을 찾았다. 황덕이 진주냉면. 이후에 박군자 진주냉면이 되었다가 지금은 폐업했는지 인터넷에 안 뜨네. 그 땐 몰랐다. 실제 진주냉면은 20세기 언젠가 사라졌고 지금은 완전 새롭게 태어난 음식이라는 걸.


진주냉면의 특징은 각종 해산물을 끓인 육수에 고구마전분 위주의 면을 넣고 소고기 육전을 얹었다는 점이다. 해산물 육수가 비리다는 얘기도 많은거 같은데 내가 워낙에 해산물과 친숙해서 그런지 구수하면서 개운했다. 계속 들이키게 되는 맛. 한여름이라 그런지 자리가 부족해서 다른 분과 합석했다. 이미 나흘 전 군산 복성루, 사흘 전 전주 베테랑에서도 합석 해봐서 그러려니 했다. 언제 또 진주에 와서 진주냉면을 먹어보겠나 싶어 더 집중해서 음미했다. 그 땐 몰랐다. 다음 해 내가 공군으로 입대해서 여기 진주에 또 오게 될 줄은.


이제 진주를 떠날 시간. 진주역으로 걸어간다.


당시의 (구) 진주역.


경전선이 열차가 워낙에 적어서 시간 잘 맞춰야한다. 처음부터 시간표를 다 엑셀에 정리해와서 이미 알고 왔다.


내가 유유자적하는 사이 세상은 이렇게 요동치고 있다.





오후 2시경. 예정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온 부전행 무궁화 열차. 다음 목적지는 진해다. 진주 안녕! 그 땐 내가 몇 달 후 여기로 끌려올걸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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