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동방의 금수강산

[진주] 내일로 I - 만 스물 셋의 첫 전국일주, 2011년 8월 (18)



오후 5시, 순천역에서 출발하는 부전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출발 전에 운전실 문이 열려있어 살짝 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들어가지는 않았다. 들어가서도 안되고.


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이게 2011년도 9호 태풍 무이파가 서해상으로 올라오고 있어서 생긴 비바람이었는데 그래서 이틀 전 전주에 있을 때 그렇게 무더웠나 보다 이 때 제주도와 전라남도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사망자, 실종자도 나왔다.



한시간 반 정도 만에 진주 도착.


아직까지 경전선 개량 전이라 진주역이 진주 시내에 있었다.


아침 일찍 순천역에서부터 하루를 함께 보낸 동갑내기 예비역 병장 내일러와는 여기에서 헤어졌다. 그 친구는 바로 시외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같이 다니기 재밌어서 따라가는 것도 괜찮았겠으나 나는 결국 마다하고 진주에 남았다. 애초에 진주 관광이 목적이기도 했고. 내가 계획한 것을 즉흥적으로 바꾸기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걸 이 덕분에 알았다.


숙소로 정해둔 찜질방이 신안동 신시가지에 있어서 이 때만 해도 신시가지였다 (구) 역 앞 사거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갔다. 그 사이에 비는 더 거세졌고 땅거미도 져버려서 갑자기 무지 어두워졌다. 사진 찍는건 고사하고 우산 쓴게 무색하게 온 몸이 흠뻑 젖었다. 이 날은 진짜로 빨리 숙소 찾아들어가서 씻고 쉬어야 할 상황이었다. 스마트폰도 아직 없어서 지도는 볼 생각도 못 하고 어둠 속에서 비 맞으며 갈팡질팡하다가 큰 길 안쪽 골목에 있는 사우나를 비로소 발견했을 때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푹 쉬고 아침 일찍 나왔다. 다행히 비구름이 다 지나갔는지 화창한 아침.


그런데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의 찜질방에선 매트리스가 다 있었는데 여기부터 시작해서, 아니 이 전 봄에 갔던 통영부터 시작해서 경상도 지역의 찜질방에선 하나 같이 매트리스를 주지 않더라. 왜 그런거지??


뭘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태풍에 쫓겨 들어갔던 전 날 저녁은 찜질방에서 사먹었고, 아침으로는 마침 사우나 앞 큰길가에 맥도날드가 있길래 여유롭게 앉아서 맥모닝을 먹었다. 혼자 국내여행하면 이렇게 된다니까. 아침도 어떻게 잘 먹기가 어렵다.


어제 내렸던 그 정류장에서 시내버스 타고 한 30분 거리의 진양호 공원을 찾아왔다. 여행하다 시간이 남는 꼴을 못 보는 성격인게 이런데서 드러난다. 진양호는 남강에 댐을 지어서 생긴 인공호수. 이 곳 공원에는 진주랜드라는 놀이공원도 있고 진양호동물원이라는 경남 유일의 동물원도 있다.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에 가려고 여기 온건 아니고 그저 경치 보려고 왔다.


충혼탑.




은근히 여기가 또 산이더라. 아오... 등산할 기분 아니었는데.




지난 밤의 태풍 무이파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 산책로가 이렇게 된건 처음 봐서 진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는 여길 또 나무 밑으로 기어서 지나감.


꽤 오래 된 나무 같은데 제대로 부러져버렸다.



느긋하게 산책하기에는 꽤 좋은 곳 같았다. 내 여행 스타일이 그렇게 느긋하지 않아서 문제였지.




아흐 나는 이런 조잡한 안내팻말만 보면 왜 이렇게 짜증나지...



재일본 진주친목회벚꽃단지 기념비. 우리나란 뭐든지 이런 기념비가 너무 크고 생뚱맞은거 같다.


이재호 노래비. 진주 출신의 작곡가라는데 누구였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대단한 분이셨는지 전혀 감도 안오니...


공원 정상에 있는 진양호 전망대. 여기까지 올라와서 또 계단이다. 걸어오면서 사람이 거의 안 보였는데 여기오니 비로소 사람을 좀 만날 수 있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365 계단이라고 일년계단이란다. 미치겠다...





하룻밤 쏟아진 폭우인데 어마어마했나보다. 넓은 호수가 완전 흙탕물이 되어버렸다.


깨끗하고 시원한 경치를 감상하려고 왔는데...




이 풍경 보려고 진양호공원 온거 맞다.




365 계단이라며 일년계단이라고 작명하는 센스는 도무지 간지러워 참을 수 없지만, 또 이런거 있으면 안 걸어보고 못 참는 것도 내 성격. 그런데 진짜 365개인지 세어보다가 중간에 까먹었다.



일년계단 기념비(?)




가요황제 남인수 동상. 진주가 낳은 4-50년대 조선 최고의 인기가수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했고.


진주시 조정훈련장. 훈련하러 오신건지 모르겠지만 날씨가 개자마자 모이신 듯 하다.



다시 돌아나가는게 또 일이네...


꾸준히 영업하는 식당 같은데 출입구 관리가 너무 안된거 아닌가...


와 여긴 또 거의 폐허... 이쯤되면 진짜 무섭다 ㄷㄷ 흉가체험 상품을 개발해도 될거 같다.


해도 나오고 슬슬 내려가는 길이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 날은 8월 8일, 가장 더울 때였다.


뭐지 또, 이 와중에 여긴 민가인가...




우약정. 진주 출신의 재일교포가 건립해주었다고 한다. 여긴 이래저래 일본이랑 인연이 있는거 같네.


우약정에서 잠깐 쉬고 있는 중에, 핸드폰 오래 쓰셨는데 스마트폰으로 바꿔보시라고 통신사에서 전화가 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바로 끊었겠지만 그 땐 사실 나도 조금 진지하게 통화했다. '김태희의 쿠키폰'을 3년 넘게 쓰고 있던 상황이라. 결국 나는 쿠키폰을 1년 더 쓰고 막 출시된 갤럭시S3로 바꿨다.


가족쉼터.




대충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내가 굳이 여길 왜 왔던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시 버스타고 시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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