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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혼자서도 통영, 2011년 5월 (4) 통제영·충렬사


[통영] 혼자서도 통영,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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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동피랑
  ▷ (3) 남망산





중앙동우체국 앞에는 청마 유치환 시인의 흉상,

그리고 대표작 '향수', '행복'의 시비가 나란히 있다.



청마가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

훗날의 아내가 되는 고향 동생 권재순이

그가 보낸 일본 신문을 받을 수 있던 것도,

다시 고향에 돌아온 청마가

각지의 지인들에게 시와 편지를 보낼 수 있던 것도

다 이곳 우체국 덕분이었을 것이다.




1905년에 설립된 장로교 충무교회.

통영, 거제 일대 많은 기독교회의 뿌리가 된 중요한 교회라고 한다.



통제영 도착.


통제영은 한창 복원 공사중이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작업을 했다고 하니,

내가 방문한 2011년은 대략 마무리 단계였을 듯하다.



통영(統營)이란 이름이 애초에 (統制營)을 어원으로 한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4년에 이곳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이전하면서

이 일대가 '통영성'이라는 군사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


한국에 그렇지 않은 옛 도시가 있겠느냐만,

통영도 옛 성곽, 망루, 여기 통제영이 다 일본에 의해 헐려 없어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이 세병관이라고 한다.


위 사진은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었던 중영청.

통제사의 참모장인 '우후'의 군영이었다고 한다.



망일루(望日樓).

본청인 세병관의 바깥 문이라 세병문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이 망하기를 기원하는...게 아니고

통행금지 발령과 해제를 알리는 종을 울리는

한양으로 치면 보신각에 해당하는

종각(종루)였다고 한다.


그 맥락에서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날(日)이 오기를 바라는(望) 누각이란 뜻이니.

통영성의 주민들은 밤 통금시간 동안

다시 새벽이 되어 망일루의 종이 울리기만 기다렸을 것이다.



서울의 5대 궁궐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지만

저 넓은 땅에 많이 있던 통제영 건물들 중에

가운데 세병관 빼고 다 없어졌다는 얘기다.

지금에라도 다시 복원하는게 반가운 일이다.



연 2회 임진왜란 승전기념 행사를 열었다는 수항루.

원래 통영성 밖 부둣가에 있었는데

현대에 이르러 해안 재개발을 하게 되며

여기로 이전했다고 한다.



오오 국보...



세병관의 안쪽 문인 지과문.



두룡포기사비.

원래 두룡포로 불렸던 이 마을로 통제영을 옮기게 된 경위,

그 이전을 지휘한 6대 통제사 이경준의 가문적 배경과

개인적인 약력, 통제사로서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적비이다.



세병관(洗兵館).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에서 따온 말로

병기를 씻어 전쟁을 준비한다는 의미와

병기를 씻을 수 있는 평화를 기원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현판이 사람보다도 크다!




현판이 큰게 중요한게 아니다.

세병관 건물이 엄청나게 크다.

서울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한국에서 평면면적이 가장 넓은 목조건축물이다.


이보다 더 큰 목조건물로 일본 나라의 동대사 대웅전,

중국 북경의 자금성 태화전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 언급된 다섯 곳 다 가봤다! ^^




2016년에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때는

단청이 채색 되어 있었다.



내가 왜 인생의 사실상 첫 여행지로

하필 통영을 택했을까.


돌이켜보니 이보다 1년 전,

휴학하고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짜로 봤던 많은 영화 중에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통영을 배경으로 한 불륜남녀들의 이야기인데

서울을 거의 벗어나질 않던 내게는

같은 한국이라는게 무색할 정도로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어떤 찌질한 감수성을

질척질척하게 표현해낸 수작이었다.

곧바로 '아이언맨2'를 봤는데 그렇게 허접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경이

바로 세병관이었다.



영화 매니아가 시간이 맞아 우연히 본 한 편의 영화.

그 영화 때문에 짧게나마 여행을 결심하게 됐고,

또 그 한 번의 여행이 나를 여행 매니아로 만들었다.


이 모든게 홍상수 세병관 때문이다.



아직 세병관-망일루 중심축 외의 건물들은

복원공사가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직은 더 이상 볼래야 볼 수 없으니 나가기로 한다.




통영시향토역사관.

향토사학자 김일룡 씨가 평생 수집한 유물 3000 여점을 위탁전시했는데

이게 정말 생각 외로 매우 알차서 볼 만 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를 다녀간 4년 후인 2015년에 폐관되었다고 한다.

경남일보 '통영시향토역사관' 문 닫는다



기왕 역사기행을 시작한 김에 충렬사로 향한다.



통제영과 충렬사 사이의 서문고개는 소설가 박경리 작가의 고향.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배경으로 언급을 하셨다!



옛 통영성의 성곽이었던 것 같은데

복원정비 공사를 준비 중인듯 했다.



충렬사 도착.


충렬사는 7대 통제사 이운룡 시기에 설립된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

통제영 주관 하에 해마다 두 차례 충무공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구한말 통제영 폐지 이후에는 통영 유지들이 충렬사보존회를 결성,

오늘날에도 충무공의 위패를 관리하고 있다.



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세운 강한루.

충무공의 8세손이기도 하다.



동백나무





111대 통제사이자 충무공 5세손 이언상의 사적비



충무공의 후손 열두명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했다고 한다.






통제영에서 파견 온 장교들의 사무실이었던 숭무당.

현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원이었던 경충재.

제사기구의 창고였던 서재.

제관들의 대기실, 탈의실이었던 동재.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 정당.



아침에는 산 위에서 뵙고 여기서 또 뵙습니다.



남쪽 나라의 이국적인 나무






백석 시인의 시비도 있다.

역시 문화 예술의 도시.



충렬사의 급수를 위해 판 정당샘.

원래 우물 하나를 팠는데 물이 탁하고 말라버려서

하나를 더 팠더니 물이 깨끗해지고 많아졌다고 한다.

사체나 상여가 이 위로 지나면 물이 흐려지고

또 두 우물을 합쳤더니 전염병이 돌았다고 한다.

햇빛을 못 받아도 물이 흐려져서 지붕을 못 씌운다고 한다.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신비한 우물이다.




전기불터.

통영 최초의 발전소가 있었던 자리도 이렇게 기념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 하는게 맞는거다.



[통영] 혼자서도 통영,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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