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러브 인 아시아

[중국] 베이징(북경), 2008년 2월 I


2007년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서 생활한지 이제 1년. 2008년의 설 연휴 역시 지난 추석처럼 혼자서 할머니댁에 가야하나 하고 있던 차였다. 칭다오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엄마가 의외의 제안을 하신다. "춘지에(설날) 때 교회 사람들이랑 같이 북경 가기로 했는데, 너도 올래?" "오오 콜!"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당장 사흘 뒤에 칭다오 집으로 가야하는 일정. 뭐 어려울 것은 없다. 전년도 여름방학에 칭다오에 다녀온 적 있었고, 다시 그 때처럼 동네 여행사에 의뢰해 항공편을 예약했다. 끝.


사흘 뒤, 리무진버스를 타고 당당하게 인천공항 도착. 대한항공 창구에서 보딩을 하는데... 어? 중국 비자가 없다??


내막은 이렇다. 2005년까지 중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는 주기적으로 아빠가 영사관을 통해 연장을 하신 장기체류 비자를 갖고 있었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2006년, 대학에 입학한 2007년도까지도 그 비자가 유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번 중국에 갈까말까해지자 부모님은 더 이상 내 비자를 연장할 필요도, 방법도 없었고 (여권을 서울의 내가 갖고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게 내 비자의 유효기간이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게 유효했던 2007년 여름까진 아무런 문제 없이 항공권만 사서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문제가 달라진 것이다.


황망하게 집에 전화를 거니 부모님도 황당해하심은 매한가지. 출근해 계셨던 아빠가 회사에서 손님 등을 모실때 쓰는 방법인 초대장을 쓰기로 했다. 법인 초대장을 통해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이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칭다오의 아빠 회사에서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창구로 영어로 된 문서 한 장을 팩스를 통해 보냈고, 이걸 갖고 어찌저찌 출국을 할 수 있었다.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도착한 칭다오 류팅공항. 출입국심사원들은 "중국어로 된 문서를 갖고와라", "일행이 와서 픽업해야 보내줄 수 있다"며 계속 나의 입국을 보류하고 기다리게 했다. "영어도 읽을 줄 모르냐"고 따져보기도 했지만 "응 모른다."고 답하니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엄마가 급하게 택시를 타고 달려오셔서야 입국할 수 있었다. 한시간은 족히 그렇게 발이 묶여있었는데... 살다살다 추방 당하는건가 생각도 들고, 영화 <터미널>도 생각나고 참 심경이 복잡했다. 처음 출입국 관리들과 충돌했을 때 대한항공 직원이 달려와서 안심시켜주고 나의 모자란 중국어를 대신해 설명도 해주고 그래서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이 때 이후로 항공사와 그 직원들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가 참 좋다. 


다른 탑승객이 다 떠나고 난뒤 홀로 남아 엄마를 기다린 입국심사장. 참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가서 이번에 함께 여행하게 된 목사님 가족 및 다른 가족들과 합류해서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이 때는 올림픽 준비를 위해 한창 칭다오역을 리모델링하고 주변을 정비하고 있을 때라 칭다오역이 폐쇄되어 그 다음 역인 쓰팡(사방)역이 칭다오 방면의 시종착역이었다. 지금은 쓰팡역이 구글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데, 아마 고속철도의 신설과 철로 정비를 하면서 없어진 모양이다.


열차로 향하다가 카메라를 보시고 급 포즈를 잡은 아빠.


쓰팡 발 베이징 행 D54편 열차. 우리나라의 KTX - 새마을 - 무궁화... 처럼 중국에는 더 다양한 등급의 열차가 존재하는데, 우리가 이용한 열차는 D로 시작하는 번호의 '동처주(동차조)'라고 해서 고속열차인 G와 C 다음 가는 초특급열차 되겠다. 속도는 대략 시속 200~250km. 우리나라로 치면 KTX보다 아래, 새마을보다는 위 정도? 다만 당시는 아직 고속철도가 개통되기 전이라, 당시로서 중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 등급이었다. 예전 2002년도에 베이징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때는 아직 D 클래스가 있지도 않았기에 그보다 낮은 등급의 침대칸 열차를 이용해 야간에 이동했었다. 어쨌든 D 클래스 정도만 되어도 쾌적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여행할 수 있다.



다 좋은데 밖에 볼게 없다. 가도가도 계속되는 대륙의 지평선.






어느 시골역.



한 9시간 쯤 걸렸나? 대륙에서 9시간이면 옆 동네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베이징역 도착.



예전에 2002년도 봄에 처음 수학여행으로 왔었는데, 그 때 선생님들이 세계에서 가장 이용인원이 많은 역이라고 말씀해주셨다. 2008년에도 그리고 지금 2015년에도 여전히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베이징역 앞 광장.


베이징 입성 기념으로 부모님 한 컷.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 중국 최대의 명절 춘지에(설날) 시즌이라 더 그렇다. 거기다 건물들도 다 하나같이 큼직큼직하다. 이 부분은 확실히 대도시마다 차이가 있는데, 칭다오의 빌딩들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사이즈라서 별로 큰 감흥이 안 느껴지는데 다만 모양이 하도 특이한 건물이 많아서 확실히 외국 같다 베이징에 오면 각 건물의 사이즈가 압도적으로 커서 위압감이 있다.




지나가면서 찍어서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




식당 도착. 내가 좋아하는 베이징 카오야(베이징덕)도 나오고 그랬는데 하필 내가 기차에서 일행이 준 삶은 계란을 잘못 먹고 체하는 바람에 거의 못 먹었다. 첫 날의 일정은 여기까지!



[중국] 베이징(북경), 2008년 2월 II
[중국] 베이징(북경), 2008년 2월 III
[중국] 베이징(북경), 2008년 2월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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