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동방의 금수강산

[군산] 내일로 I - 만 스물 셋의 첫 전국일주, 2011년 8월 (1)


8학기 째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추가학기 한 학기를 더 다니고 졸업을 그리고 입대를 앞두고 있던 2011년 여름. 지난 5월 통영 여행으로 자신감이 붙은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내일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중 일이지만, 이 여행이 결과적으로 마지막 내일로는 아니긴 했다.


만 25세 이하의 내국인에 한해, 연속 7일 동안 무제한으로 새마을호 이하의 열차를 탈 수 있던 내일로. (몇 년 전에 나이라든가 여러 조건이 바뀌었다고는 들었는데 2011년 당시에는 그랬다.) 그 해 나는 만 23세였으니 딱 맞았다. 이제 문제는 예산과 행선지.


당시 54,700원이었던 티켓값이야 용돈 받아 쓰는 대학생 입장에서 헉 소리 나는 큰 돈이긴 했지만 자취생으로서 마트 한번 갈 때마다 그 정도 돈은 우습게 썼던 것은 둘째 치고 이 티켓을 사야 내일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여행 가면 계속 돈 쓰는게 일인데 얼마나 돈이 많이 깨질 것인가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즈음에 중국에 계시던 엄마가 마침 볼 일이 있어 잠시 귀국하셨고, 잘 다녀오라며 용돈을 좀 쥐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 그럼 이제 어디를 들를 것인가. 가보고 싶은 곳이야 많지. 그 때까지 살면서 친가가 있는 춘천 정도를 빼면 기차여행이랄 것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철도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었다. '내일로 기차로' 라는 내일로 가이드북을 사서 각지의 관광지와 향토음식에 대해서 공부를 했더니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아졌다. 고민 끝에 장항선 - 전라선 - 경전선 - 경부선 루트로 충청, 전라, 경상도를 돌고 와야겠다는 큰 틀을 짰는데, 그럼에도 노선 상에서 이름 좀 들어봤다 싶은 지역은 다 가보고 싶어서 골라내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처음에 적어놨다가 지워버린 곳들이 천안, 서천, 남원, 보성, 하동, 밀양, 옥천...


고심 끝에 짜낸 나의 첫 내일로 일정.


1일차: 서울 용산역 출발 - 군산 관광 및 1박.

2일차: 군산 - (익산역 환승) - 전주 관광 및 1박.

3일차: 전주 - 곡성 관광 - 여수 관광 및 1박.

4일차: 여수 - 순천 관광 - 진주 관광 및 1박.

5일차: 진주 - (창원역 환승) - 진해 관광 및 1박.

6일차: 진해 - 대구 관광 및 1박.

7일차: 대구 - 대전 관광 - 서울 도착.



그렇게 해서 드디어 2011년 8월 4일 새벽, 용산역에서 장항선 새마을호를 타며 내일로를 개시했다.


이 때가 살면서 처음으로 새마을호를 타본 것이었다. 오히려 KTX는 전에 타봤는데도. 어릴 때 새마을호를 얼마나 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드디어 평생의 한을 풀었다.


아산역(천안아산역) 부근 지나다가 본 펜타포트 아파트. 충청권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는데, 처음 봤을 땐 서울 촌놈이라 많이 놀랐다.


광천역에서 바로 보이는 광천 토굴새우젓 시장. 나와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승객분들 중에도 새우젓을 사러 여기까지 원정 온 분들이 있는 것 같았다.


장항선의 어원이 되는 장항역 도착. 원래 이 곳이 종점이어서 장항선이었는데 군산, 익산까지 직결되어서 더 이상 종점이 아니게 되었다. 사실 철도를 이설하면서 역 자체도 장항읍이 아닌 전혀 다른 동네에다 옮겨놨다. 장항에 없는 장항역. 홍철 없는 홍철팀.


금강하굿둑을 건넌다. 갯벌 너머로 보이는 군산 시내. 이 때가 살면서 처음으로 전라도 지역을 가는 것이었다.


군산 여행의 첫 행선지로 잡은 곳은 군산역에서 멀지 않은 줄로만 알았던 금강철새조망대. 군산역도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 지었는데,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철새조망대에서 철새 구경 좀 하고자 했다. 처음 온 전라도 여행, 들뜬 마음에 신나게 걸어가면서 이렇게 꽃 사진도 찍고.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맨날 운동삼아 걸어다닌다고 지방에서도 서울처럼 걸어다니면 다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첫번째 오류였고, 군산역에서 집어든 군산시 '관광'지도는 일반적인 지도와 달리 축척이 일관된 비율로 축소된 지도가 아닌 약도 형식의 지도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나의 두번째 오류였고, 무더운 8월초에 가방 짊어지고 걸어가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게 세번째 오류였다.




길 이름 보면 맞게 가고 있기는 한데... 여행 초장부터 죽겠더라.




제발 빨리 좀 도착했으면 싶었다.


꽃 사진 찍을 수 있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이 정도는 집 근처 홍제천에서도 찍을 수 있었을텐데.


마침 기아 타이거즈 야구팀이 당시의 제 2 홈구장이었던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기간이었나보다. 정 할거 없으면 야구 보러 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홈팀은 홈팀인데 호텔에 와서 묵어야 하는. 


아무리 변두리 지역이라지만 보도블록 관리 상태가 처참하더라.


거의 50분 쯤 걸어서 겨우 도착했다. 여행 시작부터 제대로 뻘짓.


안 그래도 힘든데 거대 오리 때문에 주눅이 든다.


오 저기가 전망대.



길에서 꽃 사진 찍다가 왔으면서 또 꽃 사진.





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까 기차로 건너왔던 금강하굿둑과 놀이공원인 금강랜드.


철새 보겠다고 어렵게 철새조망대를 찾아왔는데... 내가 정말 한심하고 덜떨어졌다는걸 깨달은게, 여기서 주로 볼 철새는 겨울을 나러 북쪽에서 내려오는 겨울 철새들인데... 나는 여길 8월에 찾아 온 것이었다! 겨울 철새를 보러, 한 여름에.


당연히 겨울철새는 볼 수 있을리가 없고, 조류 전문 동물원(?)이기도 한 이곳에 이렇게 있는 새들이나 보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얘네는 자라면서 계속 같이 방을 옮겨가나 보더라.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파충류도 있다.




포유류도.


부화체험관이라 알 모양이다.















위압감이 들게 만드는 이 오리의 정체는 철새신체탐험관. 항문 부위로 입장하면...


헐.



됐다. 그만 보자.



잘 만들어진 곳이었지만 굳이 이번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올 것까진 아니었던 곳이었다. 배고프고 힘들어 죽겠다. 택시타고 시내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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