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바다/그깟 공놀이

[야구] 나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야구 연대기, 제 2부

나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야구 연대기, 제 1부


1997

응답하라

내 기억이 맞다면, 바로 97년도에 내가 드디어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었다. 어릴 때 부모님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시회 등에 자주 데려가셨는데, 한 번 온 김에’ 코엑스에서 가까운 잠실야구장에 가자고 하셨던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경기장에서 본 야구 경기는 삼성 라이온즈 대 OB 베어스의 경기였다. 현대 팬이던 우리 가족이 OB와 삼성 두 팀 가운데에서 큰 망설임 없이 OB를 택해서 응원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그 때부터 몇 년 전까지 쭉 베어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단 1~3위 사이에 있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히어로즈와 더불어 내 마음 속에서 호불호의 롤러코스터를 탄 팀이 되었다. 그리고 삼성은, 비록 멀리 경기장 반대편에서 보았지만 치어리더들의 안무와 복장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 촌스러워서(...) 첫 인상부터 굉장히 별로였다.

 

1998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의 거대한 폭풍이 몰아닥쳤다. 친한 친구들의 아버지들이 거의 전부 다 명예퇴직 당하시는 와중에 그래도 우리 집안은, 자세한 내막이 어쨌든 간에, 화를 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가 다니신 회사는 IMF와 관계 없이 늘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는 있으셨는지, 부모님은 나를 현대 유니콘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 주셨다. 접수처가 현대백화점이었는데, 코엑스에 종종 가던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코엑스의 무역센터점으로 향했으나 무역센터점 그 어디에서도 리틀 유니콘스 회원 접수처는 찾을 수 없었고, 안내부스 누나에게 물어보고서야 압구정본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기어코 압구정까지 어렵게 찾아가서야 나는 리틀 유니콘스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유니콘스 백팩가방, 모자, 선수단 사진큐브(뭐 그런게 있었다. 설명하기 귀찮다.), 글러브, 박재홍 선수 사인볼(이건 집에 지금도 있다. 이것만.), 김경기-이숭용-박재홍-박진만 선수의 사인이 나란히 인쇄된 알루미늄 배트(내가 왜 중학교 때 이걸 갖고 야구를 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등의 선물을 받았다. 생일 무렵엔 선물이라고 성우리조트 숙박권도 날아왔는데 써먹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화려함은 광명시 달동네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던 나에게 대단한 문화충격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우리 집은 유니콘스 어린이 회원 가입까지는 괜찮지만 (내가 이 날 태어나서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화이트초콜릿을 사먹는 것은 어려운 형편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끝까지 화이트초콜릿은 사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부티 줄줄 흐르는 강남과는 태생적으로 안 맞는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인천 도원(숭의)야구장.
이렇게 외야 쪽에서 바라본 적은 없지만 저 뒷편의 광성중/고등학교 언덕 풍경은 내 기억 속에
지금도 생생하다. 사진출처는 안산시 야구협회.

어린이 회원에게는 경기장 입장권 할인 혜택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자주 인천 도원야구장을 찾았다. 98시즌의 홈 개막전이었나? 처음 도원구장에 갔던 날 나는 괜히 회원카드를 온 현대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고 매표소 밖 그 인파 속에서 보여주려고 손에 들고 쓸데없이 왔다갔다 돌아다녔다. 그 때문이었는지, 입장권이 우리 가족 바로 앞의 앞 사람 차례에서 매진되고 말았다(...) 당황해하는 우리 가족을 보고 지나가던 어떤 누나가 표를 양보해줘서 다행히 한참 만에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그 날 경기 내용은 지금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경기 끝나고 나오는 길에 기념품점에서 선수단 프로필 자료집인 팬북을 샀다. 팬북을 통해 갓 입단한 고졸 신인투수 김수경 선수를 알게 되었고, 그의 프로필을 읽고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누나 좋아해서 난 바로 그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김수경 선수는 98시즌 신인왕을 차지했다. 4~5학년 사이에 여기저기 한 30개가 넘는 사이트에서 마구잡이로 만들었던 내 이메일 계정의 비밀번호는 김수경의 별명 Dr. K를 따와서 죄다 drk였다. (그 때는 알파벳 3자리로도 비밀번호 설정이 가능했다.) 먼 훗날 내가 아들 말고을 낳으면 수경이라고 이름을 지을 수도 있다...고 한동안 생각했지만 아마 나는 결혼하기도 굉장히 힘들것이다.

앳된 모습의 신인시절 수경 언니. 나중에 안경을 벗으니 감우성이 나타나더라.

8월 즈음의 어느 주말엔 아빠와 더블헤더 삼성전을 보러 도원구장을 찾았다가 응원하는 내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 또 의식을 하기 시작하면 다시 안 잡아주더라.

다저스 박찬호 선수의 활약도 이 무렵에 장난이 아니었다. 올해 류현진 덕분에 다저스가 다시 국민구단이 되었고 또 지난 몇 년간 박지성 선수와 맨유를 중심으로 놓고 유럽 축구를 봤듯이, 이 때 다저스가 이미 한국인의 국민 팀이었다. 제발 한국인이면 다저스 좀 응원합시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프로야구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도 장난 아니게 공부했다.’ 사실 뭐 진짜로 달달 외우며 공부한건 아니긴 하지만, 어느새 학교에서 나는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야구 전문가였다.

그러던 와중에 결국 나의 현대 유니콘스가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그 기쁨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그런 와중에 3학년 때 기말시험 성적 평균 99.8점의 전교 1등이었던 나는 네자릿수의 나눗셈을 못해서 4학년 기말 평균점수가 전년보다 10점 정도 떨어져 89점(...)을 받는 바람에 엄마에게 진짜 장난 아니게 혼났다. 한 일주일 동안 나에게 말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도 초등학생인데! 하지만 대학 가서 5년 내내 성적이 그렇게 개판을 쳤어도 저렇게 혼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나는 이 해의 스포츠신문 야구 기사는 삼성의 외야수 이순철 선수포수로 투입됐다는 기사이다. 그런데 이 시즌 후 삼성에서 은퇴한 이순철은 원래 해태의 어마어마한 레전드였다는건, 부끄럽지만 조금 나중에야 알았다.

 

1999

예전에 친구 집에서 하드볼 5를 한 적이 있긴 했지만, 내 인생의 진정한 첫 야구 게임 트리플 플레이 2000을 시작했다. 아빠가 퇴근길에 사주신다고 하셔서, 최소 30분은 족히 걸어 개봉역 민자역사까지 가서 얻어냈다. 아마 피파 99에 이어 두 번째로 산 정품 게임 패키지였나 그럴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한동안은 MLB에 조금 더 빠져있었다. 하긴 삼국지도 책보다 게임으로 먼저 접한 나였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투수 3인방이야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게임 덕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엄청난 타선에 매혹되어 버렸다. 매니 라미레스, 짐 토미, 케니 로프튼, 샌디 알로마 주니어로베르토 알로마 형제, 오마 비스켈, 데이빗 저스티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설레는 꿈의 타선이자 야수진이었다. 당연히 우승은 못했다. 지금도 나는 MLB에선 클블’에 애정이 깊다. 단언컨대, 나는 추신수 선수 때문에 인디언스를 좋아하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클리블랜드 데이빗 저스티스를 상대하는 애리조나의 에이스 랜디 혼손존슨 옹. 쓸만한 스크린샷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2000

현대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임시 연고지로 수원에 자리 잡았다. 어느 일요일에 부모님과 수원구장에 한 번 찾아갔는데, 그 길이 도원이나 잠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어려워서 아주 그야말로 학을 떼었다. 전철 환승만 두 번하고 다시 또 버스를 환승해서 갔는데 그게 우리 가족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고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 것이다. 더군다나 달동네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광명사거리역/철산역/개봉역까지 걸어가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수원이란 도시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야석 표가 없어서 내 야구팬 인생 처음으로 외야에서 본 경기였다. 현대 톰 퀸란이 거의 우리 앞으로 날아오는 홈런을 쳤지만 재박산성 2중으로 설치된 펜스 사이의 빈 공간에 공이 떨어져 아무도 홈런볼을 줍지 못했다. 현대가 경기에서 이겼다는 것, 그거 딱 하나 빼고 경기장 환경이나 오고가는 교통편이나 정말 모든 게 다 최악이었다. 광명에 사는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그랬다. 그리고 그게 내가 경기장에 가서 본 마지막 현대 유니콘스 경기였다.


나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야구 연대기, 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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