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러브 인 아시아

[중국] 쓰촨성(사천성), 2005년 4월 I


ISC 체스 대회 참가를 위해 청두(성도)를 간지 고작 석 달 만에 다시 청두에 가게 되었다. 2005년도의 10~12학년 수학여행(spring trip) 행선지는 쓰촨성(사천성)이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내가 QMIS(ISQ)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간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그 해 말, 나는 11학년 1학기까지만 다니고 대학 입시를 위해 서울로 전학오게 된다.)



청두 시내의 고층빌딩. 이 때 이미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대도시로서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티베트 방면으로 나아가는 중서부 거점도시의 위상도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발전했을 것이다.



청두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일전에 찾았던 무후사/금리 일대에서 각자 자유여행을 하도록 해주셨다. 다들 삼삼오오 무리지어 금리 골목을 돌아다닐 때 나는 지난번에 들어가보지 못해 아쉬웠던 무후사를 탐험해보는 기회를 잡았다. 유적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나 혼자였다. 사실 삼국지는 그나마 동아시아인이나 관심있을까, 서양 애들은 알지도 못했다. 나중에 커서 나 홀로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될 것을 암시한 사건...








여기저기 비문이 많은데, 다 읽을 수도 없고 읽지도 못한다... 이곳 유물 대부분이 후대(명~청시대)에 생겨난 것이다. 그래도 후한말/삼국시대로부터 1,500년 이상이나 지난 시절이었는데, 그만큼 삼국시대 촉나라와 그 시절 인물들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청두와 쓰촨성 사람들에겐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촉한 주요 문관들의 석상

정기 / 마량 / 양홍 / 진밀(진복) / 동윤 / 장완 / 진진 / 등지 / 동화 / 비의 / 부융(부동) / 여개 / 간옹 / 방통


촉한의 주요 공신들이 석상으로 모셔져있다. 전부 한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 1600~1700년대에 만들어졌다. 사실 다 똑같이 생겨서 설명을 안 보면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한 쪽은 문관들 위주로 도열해있는데, 부융(부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융이 맞다)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진밀도 진복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진밀이 맞다.) 거기다가 등지는 갑옷을 입고 있기도 하다. 내 나름대로 촉한 역사에서의 중요도를 구분해서 사진을 합쳐 배열해보았다.



대부분의 공신 석상은 옥외 회랑에 나란히 모셔져 있는데, 일부 아주 중요한 인물들은 각자 건물 안에 특별하게 모셔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의박운천(義薄雲天, 의리가 하늘의 구름처럼 두텁고 변치 않음)'이라고 쓰인 현판의 건물이 있다. 들어가보니...



황제의 의관(!)을 한 관우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좌우로는 양자 관평과 문관(특정 인물은 아니다), 아들 관흥과 무관(역시 특정인물이 아닌거 같은데... 주창이었나? 그런데 주창은 연의의 허구 인물...)이 관우를 보좌하고 있다. 역시 중국인들에게 영원히 추앙받는 신이 된 사나이 관우. 그런데 하필 재물의 신이 되었다는게 아이러니.



옆 건물로 넘어가니 유선...인 줄 알았는데 유선이 아니고 유심이다. 유선의 다섯째 아들이자 유비의 손자로서 생전 '북지왕'에 봉해졌던 촉의 왕자이다. 무능해서 나라를 말아먹은 군주란 이미지의 아버지 유선은 이 동네에서 특히 더 증오의 대상이라 석상을 모시지 못했고 (청나라 시절, 관청에서 유선의 형상을 만들어 놓는 족족 백성들이 와서 파괴해 버렸다고 한다 ㅎㄷㄷ) 반면에 촉이 망할 때 분을 못이겨 자결한 아들 유심은 추앙을 받아서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을 제끼고 이렇게 석상으로 남게 되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유선의 아들들 중에 능력치가 가장 좋다.



그리고... 소열황제 유비 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뭔가 부처님 같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리라.



관우의 일족이 있는데 장비도 빠질 수 없다. 아들 장포와 손자 장준이 좌우에서 보좌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보니 딸랑 손자 한명과 함께하는 유비, 아들 하나 손자 하나와 함께하는 장비보다 관우에 대한 대접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아들 둘에 수행 부하까지 둘을 얹어주다니... 그런데 정작 관우는 성도/사천 일대에서 활약한 적이 없었다는 거...



그 때 그 시절 종과 북... 합쳐서 종북


촉한 주요 무관들의 석상

조운 / 손건 / 장익 / 마초 / 왕평 / 강유 / 황충 / 요화 / 상총(향총) / 부첨 / 마충 / 장억 / 장남 / 풍습


아까 문관 14인이 도열되어 있던 회랑의 맞은 편에는 무관 14인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런데 여기 손건이 껴있는걸 보면 역시 부융과 바뀐 것 같다. 젊은 꽃미남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조운이 할아버지(게다가 문관의 차림이다?) 모습으로 서 있는걸 보면, 각 인물들의 말년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 것 같다. 그 와중에 코에이 삼국지 때문에 조운처럼 청년 장수의 이미지인 마초와 강유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일 수록 외모와 자세에 각자의 고유한 캐릭터를 부여한 것 같다.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되는 장익, 장억, 장남, 마충 같은 장수들에 비해 강유나 황충을 보면 확실하다. 게다가 강유는 이곳 무후사의 주인공 제갈량의 후계자라서 그런지 자세부터 뭔가 확실히 특별해 보인다. 그나저나 내가 좋아하는 법정이나 위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위연은 막판에 반란을 일으켜 명예롭지 못하게 죽어버려서 그런가 싶지만...



이 쯤에서 다시 한번 유비 폐하의 위엄을 느끼러 되돌아감. 옛날 오락실에서 삼국지를 해봤다면 알겠지만, 중국어로 유비는 '리우뻬이'라고 한다.



아아... 황숙!



이제 본격적으로 무후사 본당으로 가자. 지금까지 무후사 아니었나?



칸마다 현판이 있는데 다 찍기도, 읽기도 귀찮다.



드디어 이 곳의 진짜 주인공. 제갈량! 주군인 황제 유비를 모신 공간보다 더 넓고 화려하다. 이것이 제갈 승상의 위엄.



쭈꺼량...



제갈량하면 역시 유건에 백우선.



지금까지 봤던 걸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제갈량도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다. 아들 제갈첨과 손자 제갈상. 그런데 이 집도 관우네 집에게 밀린다?






돌아다니다 보니 세명의 의리남을 모신 사당 '삼의묘'라는게 또 있다.






의중도원이라... 도원결의의 그 도원이다.



유관장 삼형제의 활약상.



아까 그 뜬금없는 황제 복장 말고, 이제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관우다.



여기도 진짜 유비 오오.



이 장비가 아까 그 사천왕상 같은 장비보다 200배는 더 잘 생겼다.





사천성 전통 공연을 선보이는 공연장.







도원??



유관장 삼형제의 도원결의 모습을 각자 바위를 깎아 묘사해 놓았다.



하지만 복숭아는 보이지 않고...











삼국지연의의 에피소드들을 그림으로 요약해놓은 곳.





나 같은 삼국지 덕후는 이런거 하나하나가 다 재밌다.






제갈량의 남만 정벌을 기념(?)한 곳 같다.




역시 연인과 함께라면 으슥한 곳으로 가야한다. 왜?



'한소열황제지릉'. 여기가 소열제 유비의 묘인 혜릉이다. 제갈량 사당보다 한산하다.



최근에 만들어진 상징물. 옛 유적에 비해서 별 의미는 없어 보이는...



잠시 들른 시내 마트에서 발견한 '한국어 김치'. 영어 Korea Pickle도 말이 안되긴 마찬가지. 피망, 당근은 또 왜 있는건데...


쓰촨성, 즉 사천성하면 역시 매운 요리이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의 매운 요리와는 다른 차원의 매콤함이다. '더 맵다'는 의미에서의 다른 차원이 아니라, 아예 장르가 다른 매움이다. 사천 고추와 향신료의 매운 맛은 얼얼하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매운 맛이다. 그런 이상한 기분을 한국 음식에서는 맛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또 사천요리가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요리왕 비룡도 사천 사람이다. 나 역시 사천요리를 좋아하기에 이번 여행을 많이 기대했으나... 하필 여행 며칠 전에 갑자기 장염에 걸려 외국인 전용 종합병원에 가서 생전 처음으로 링거를 맞아야 했다. (내 장염의 원인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였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이 여행을 가면서도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어서 많이 걱정을 했고 또 선생님들도 적잖이 나를 신경써주셨다. (나중에 교감선생님은 "너 신경쓰다가 나까지 장염에 걸렸다!"고 하셨다 ㅋㅋㅋ 그리고 그 교감선생님은 지금 이 동네 청두국제학교(CDIS) 교장...)


굉장히 유감스러운 사실은, 내가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5년을 살면서 그 동안 음식 사진을 찍은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굉장히 뼈아프다.



저녁 식사 후 다시 금리로 돌아와 공연을 본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놀이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변검이다! 정확하게 변검은 얼굴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는 퍼포먼스의 이름이고, 이 변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사천성 지역 전통 연극을 천극이라고 한다. 참고로 경극은 베이징 일대의 연극이다. 타 지방 연극을 경극이라 하면 안된다.



숙소로 가는 길. '사천성 교통청 고속도로 계획 조사 설계 연구원'... 하는 업무를 다 같다붙인 듯한 기관명이 너무 길고 우스워서 찍었다. 영어는 더 길다.



[중국] 쓰촨성(사천성), 2005년 4월 II
[중국] 쓰촨성(사천성), 2005년 4월 III
[중국] 쓰촨성(사천성), 2005년 4월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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