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동방의 금수강산

[서울] 창덕궁, 2008년 4월

2학년 1학기 때, '시각예술의이해'라는 실내건축학과 관련 교양과목을 들었다. 내용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정말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업이긴 했으나... 조별 과제를 위해서 창덕궁을 찾았다. 창덕궁 특히 후원은 해설사와 함께 가는 특별관람을 통해 관람해야 한다.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때는 후원 뿐 아니라 본 궁 지역도 아예 자유입장이 되지 않았다. 정문인 돈화문에서부터 정기 입장시간을 기다렸다가 해설사와 함께 입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하여 궁 중심부와 후원도 함께 관람할 수 있었는데, 과제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자료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던 우리는 해설사 및 직원 분들께 양해를 구해서 관람 제한시간 내에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래는 그 때 찍은 사진들인데, 기와, 처마, 부조 등의 세부적인 건축 요소들을 위주로 찍다보니 구체적인 위치나 전각의 이름 등은 기억하지도 못하고 근거를 찾지도 못한다. 그래도 내가 찍었지만 나름 예쁘게 잘 찍은 사진들이 좀 있다.

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금천교(錦川橋).

금천교를 지나서 나오는 진선문(進善門).

인정문(仁政門). 인정전으로 향하는 문이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 이 곳에서 연산군부터 고종까지 여덟 명의 임금이 즉위식을 가졌다.

인정전 앞 품계석.

전등(+전기시설)과 황제를 뜻하는 황색 커튼 등은 대한제국 순종 시기에 설치했다.

새들이 처마 밑에 집을 짓는 것을 막는 구조물. 알박기

왕과 대신들의 집무실로 사용한 편전인 선정전(宣政殿). 창덕궁 내 유일한 청기와 건물.

편전인 희정당(熙政堂)이긴 한데... 사실 일제강점기 1917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총독부에 의해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온것. 무슨 호텔 현관 마냥 문 앞에 자동차를 세워놓을 수 있는 통로도 있고 내부 장식은 거의 서양식이다.

후원 진입로로 들어가기 전에 대기.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

정조가 부용정에서 신하들과 연회를 벌이다가 제한시간 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잠깐 귀양(...)보냈다는 섬.

오오 이것이 바로 해시계, 양부일구.

임금과 신하의 인연을 물고기가 물을 만남에 비유하여 이름지은 어수문(魚水門). 도서관인 규장각이 있었던 주합루(宙合樓)로 올라가는 출입문인데 건축학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불로문(不老門). 하나의 돌을 통으로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

연경당으로 가는 문인 장락문(長樂門). 달에 있는 신선들의 궁궐인 장락궁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서재로 사용된 선향재(善香齋).

햇빛을 막기 위한 지붕이 인상적이다.

연경당(演慶堂). 순조의 세자이자 헌종의 아버지였던 효명세자가 사대부가(혹은 궐 밖에 나가 산 왕자나 공주의 집)를 모방해 지었다는 곳.

기오헌(寄傲軒). 역시 효명세자의 독서실로서 지은 곳.

부용지 옆에 있는 영화당(映花堂). 연회장, 활 쏘는 곳, 과거시험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후원을 벗어나 다시 궁 중심지역으로. 왼쪽(동쪽) 담 너머는 창경궁이다. 원래는 이렇게 구분되지 않았지만...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大造殿)과 그 일대. 이곳도 사실 1917년 화재 때 소실되고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다 놓은 것.

대조전과 연결되어 있는 경훈각(景薰閣). 이곳도 역시 1917년에 없어졌다가 경복궁 만경전을 가져온 것이다.

대조전 전경.

대조전의 부속건물인 흥복헌(興福軒). 1926년 순종황제가 이곳에서 승하.

대조전과 그 부속 건물들의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져있다. 아무래도 1920년 경에 경복궁에서 옮겨서 다시 지은 건물들이다보니...

나가는 길에 진선문 앞에서 기념촬영.

푸터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