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바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다.

사실 나는 지난 2006년 겨울에 영화 리뷰 위주(라고 하기는 민망하고 그냥 별점 매기기에 급급했던) 블로그를 네이버에서 잠깐 굴렸다. 그리고 2008년에 사실상 폐업했다. 실질적인 블로그 운영은 2007년 여름 즈음에 이미 끝났다. 그 이후의 포스팅은 이곳저곳에서 "퍼가요~^^"(...) 남기면서 스크랩했던 것들 뿐이었고 그마저도 원더걸스 신곡 내듯 매우 드문드문 이뤄졌으니. 내용적인 면에서도 여러가지로 미흡했지만, 그것보다는 그 당시의 내가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블로깅을 할 '정신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뭐 그렇다고 지금은 준비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갓 성인이 되어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서울 한복판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 20살의 새내기 대학생에게는 해봐야 할 것들이 블로깅 말고도 너무나 많았다......는건 사실 자기합리화에 불과하고, 그런 해봐야 할 것들이란게 결국엔 대부분 게임 같은 것, 게다가 하필이면 '문명'이라든가, 'FM'이라든가, '삼국지'라든가(...) 따위의 마약류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정작 나는 남들 대학생 때 대부분 해보는 갖가지 것들의 반의 반의 반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대학을 떠나고 말았는데... 어쨌거나 나는 블로그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아이템을 생각하거나,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다듬는 등의 최소한의 노력을 무척이나 귀찮아했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많은 'raw material'을 주어져 봤자 뭐 어떻게 써먹을 생각조차 안하는데, 성의있는 블로깅이란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왜 굳이 블로그인가?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적은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이렇게 적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이 말한 적이 없다.

내 얘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글쓰는 것은 내가 그나마 (다른 것에 비해) 잘하고 즐겁게 임하는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일이다. 그런데 또 그걸 귀찮아한다니,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앞으로 내 글을 읽으면서 '와 그나마 잘한다는 글쓰기가 이 모양 이 꼴인데 다른 건 얼마나 개판인거지?' 싶을거다. 돌이켜보면 네이버 블로그를 접고나서 지금까지, 아니 네이버 블로그를 하기 한참 전부터 나는 인터넷 어딘가에 계속 뻘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살아왔다. 키보드 워리어? 이것도 요샌 이미 죽은 말이 된 것 같지만. 우선 한동안 대한민국의 인터넷 유저는 다 한다고 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있겠다. 중학생 시절부터 재작년 여름까지 한 10년 쯤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성실하게 운영하진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진 찍은거 대강 편집해서 올리는 것도 그렇게 귀찮아했다! 포토샵을 쓴 것도 아니고 싸이월드 자체 사진 편집기능 쓰는 것도(...) 네이버 블로그를 때려치운지 한참 지난 어느 순간부터는 다이어리를 사실상의 블로그처럼 써먹기 위해서 미니홈피에 한동안 집중했었다. 이런 변태적인 행태는 페이스북 때문에 끝나게 된다. 나는 페이스북을 SNS라기 보다는 사실상 마이크로블로그의 용도로 활용해왔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렇게 쓰기엔 페이스북은 사실 여러모로 부적합하다. 영화 리뷰나 맛집 탐방기, 여행기 따위를 써서 올리는 사람 입장에서나 그런 긴 호흡의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나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다. 관련 내용을 일부러 찾아보려는 사람들에게 노출이 무척 어렵고, 또 그런 내용을 올리는 내 입장에서도 지속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고 해도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 몇개만 써도 며칠 전에 올린 포스팅을 다시 찾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물 발굴 이건 미니홈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만, 그래도 페이스북이 더 심하면 심했지 나을 것은 없다. 굳이 꼽자면 페친들로 하여금 쉽고 빠르게 반강제로(...) 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아무도 '더 보기'를 누르지 않지... 그 밖에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여러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친목질이라는 추태를 벌이며 해당 커뮤니티의 본 주제에 맞지 않는 갖가지 사담을 늘어놓고 다니기도 했는데... 일기는 일기장에 (내 커뮤니티 편력사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이 얘기 만으로도 충분히 포스팅 분량 뽑고도 남는다. 디지털 유목민) 그러면 어디 올리지 않고 그냥 혼자 써서 혼자 읽어보는 것은 어떤가? 철저한 비공개로 써서 혼자 즐기는(...) 글이 얼마나 내용면에서 얄팍하고 천박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중2병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근데 사실 그건 공개여도 뭐 크게 다르지 않겠지 싶다.

각설하고, 블로그를 따로 개설해서 꾸며나간다는 것은 미니홈피나 SNS 보다는 아무래도 더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나는 네이버를 버리고 굳이 티스토리를...! 그래도, 그 귀찮음 때문에라도 조금이나마 더 성의있고 일관성 있는 포스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다시 블로그로 돌아왔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본연의 용도에 맞게 쓰도록 하고. 그런데 그 용도가 뭐였지?? 내 블로그가 온전히 나만의 개인 공간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고 나는 상당 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내가 어느 정도의 책임의식을 갖고 일정한 주제의 포스팅을 꾸준히 늘려나가면 점차 그게 나에게 정신적으로 다른 어떤 측면에서든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왜냐하면 내 신분적, 공간적, 사회적 여건이 이런거 아니면 퇴근 후에 할게 정말 더럽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막글을 쓰는 데도 만 사흘이나 걸렸다. 난 안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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