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러브 인 아시아

[중국] 윈난성(운남성), 2004년 4월 III


[중국] 윈난성(운남성), 2004년 4월 I
[중국] 윈난성(운남성), 2004년 4월 II




쿤밍을 떠나 리쟝(여강)으로 향하던 버스가 어딘가에서 멈췄다. 휴게소 같은 곳이었던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이자 신이라 불리우는 사나이 관우 공과 함께. (파란 옷은 본인 맞다. 못생겨서 모자이크.)



대륙의 또 다른 영웅 손오공 선생과도 함께 했다.



리쟝의 고성에 도착해서 한 식당에 자리 잡았다. 잉글랜드 축구 유니폼 입은게 본인 맞다. 옷은 잉글랜드인데 얼굴 생긴게 호나우딩요라서 가렸다. 내 옆에 모자 쓴 친구는 역시 한국인이지만, 중국에 오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남미에서 살다가 왔다. 그래서 이 식당에서 상당한 문화컬쳐 문화충격을 겪었다. 원래 식당에 처음 가면 시원한 물을 그냥 주는 것이 한국에서나 남미에서나 당연한 것이건만, 중국에선 더워 죽겠는데 따뜻한 차를 내주고 시원한 물을 달라니 생수를 돈 받고 파는게 아닌가. 이 친구를 뺀 나머지는 이미 중국에서 몇 년 씩 살아온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이 친구가 황당해하며 화를 낸 것. 물을 돈 받고 파는게 어디 있느냐며...



리쟝의 고성 골목에서 잉글랜드 호나우딩요 리쟝 방문 인증사진.




중국에서 이렇게 보존이 잘 된 고성은 손에 꼽는다. 물론 모든 것이 원형 그대로는 아니고 오늘날에 복원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이... 10년 전보다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진 지금은 더 많이, 더 넓게 재건축 복원되었을 것이다.



도시 곳곳에 이렇게 맑은 개울이 흐른다.



리쟝 고성은 앞선 2편에서 소개한 스린(석림)보다 훨씬 더 먼저인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리쟝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넘어가자면(이걸 쓰기 위해 나도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 칭하이(청해), 쓰촨(사천) 북부 일대에서 남하한 나시족(纳西族 / Nakhi)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에 건설해서 그 이후로 쭈욱 가꿔온 도시이다. 언어계통학적으로 티베트 계열인 이 나시족은 오늘날 세계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상형문자로 유네스코의 공인을 받은 '동파문자'를 잘 보존해오고 있지만, 이 문자를 지금껏 계속 상용해온 것은 아니고 종교적 주술적인 용도로만 사용해왔다. 즉, 이 민족 역시 상당히 종교적인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나시족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모계사회라는 점이다. 사실 중국에서 소수민족이 가장 다양하다는 윈난(운남)에 터잡고 사는 대다수 소수민족들이 모계중심사회이긴 하다.



그리고... 이제 문제의 이 장소.



정황상 리쟝에서 다리로 넘어가던 중에 들른 곳이라는건 알겠는데, 그게 대체 무슨 산이었는지 기억이 도무지 나지가 않는거다. 저 동네에 이런 산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저 멀리 야생마(?)가 풀 뜯어 먹는 이런 평원도 있다.



내가 이 산 이름을 알아내려고 진짜 별의별 짓을 다 하다가 마침내 찾아낸 단서. 이 사진 하단에 찍힌 광고판 하나. '云杉坪鸿翔山庄'(윈샨핑홍샹샨좡 / 운삼평홍상산장)이라는, 숙박업소로 추정되는 광고판... 덕분에 구글맵을 통해 리쟝 인근에 윈샨핑이라는 지명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렇게 해서 저 산은 위롱쉬에샨, 즉 옥룡설산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도 안다. 내가 어디 갔었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여행기를 쓰는게 참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중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9학년 남학생들끼리 단체 샷.



玉龙雪山, 영어로는 Jade Dragon Snow Mountain(...)이라고 한다. 최고봉인 샨즈도우(선자두)는 해발 5,596m인데, 이 지역 원주민인 나시족은 이 봉우리를 신성하게 여겨 아무도 못 올라가게 한다고 한다. 다만 위키 백과에 의하면 딱 한번 미국 등반팀이 오른 적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산에 대해서는 이따위 아무 것도 모르는 잡스런 여행기보다 훨씬 괜찮은 글이 있어서 링크로 대신하고자 한다.


중국 운남성의 옥룡설산(5595m).호도협. 여강.3.옥룡설산편.



분명 산 중턱인데 이렇게 말이 뛰노는 평원도 있고 숲도 있다.



느긋하게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곳 같아서 무척 맘에 들었는데, 이렇게 단체로 여행을 가면 그럴 틈이 전혀 없어서 싫다.





대만-미국 국적의 친구와 지금은 의사가 된 한국인 누나. 이 두 사람과는 지금도 잘 연락한다.



곧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다.






하지만 걸어서 내려가기도 한다. 케이블카와 별 차이 없다는 것이 함정.



옥룡설산을 내려오니 여기도 리쟝 고성과 같이 옛 것이 보존된 보존은 솔직히 아니고 열심히 복원해내는 마을이 또 있었다. 지금쯤이면 여기도 상당한 관광지가 되어있을게다. 다른건 기억 안 나는데 물은 참 맑더라.




버스로 한창 달려서 도착한 얼하이(洱海, 이해). 중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큰 호수이고 호수 남쪽에 다리시와 접한다.



중국적인 느낌을 내려고 애를 쓴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했다.



때는 이런게 유행이었다.



......


굉장히 유감스럽게도, 이 배에서 내려서 도착한 다리(대리)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파일명을 보니 중간에 꽤 많이 비는게 분명히 찍긴 찍은거 같은데... 일단 리쟝보다 훨씬 크고 더 화려한 역사를 지닌 도시인데 왜... 다리는 다리 바이족(白族) 자치주의 중심도시이기도 하다. 뭐 이젠 바이족보다 한족이 훨씬 많다지만. 티벳-버마 계통의 바이족은 이곳 다리를 수도로 삼아 남조/대리국을 세웠는데 그게 10세기~13세기 약 300년을 존속다. 남조/대리국은 불교 정교일치 국가로서 지금도 다리엔 그 시절의 영화를 보여주는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또 기후가 좋아서 그런지 요새는 많은 외국인이 가서 터잡고 사는 굉장히 세계적으로 힙한 동네가 되었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시간에 쫓겼는지 아주 잠깐 들러서 쇼핑만 후다닥 하고 나왔다. 나는 그 곳의 구제 옷가게에서 미군 공수부대 패치가 붙은 밀리터리룩 셔츠를 샀다. 그 옷은 한국에서 대학 다닐때 까지 계속 입다가 엄마가 버리셨다. 물론 지금 같으면 그런 밀리터리룩은 이제 쳐다도 안 본다. 암튼 그 때 마니또 놀이도 했는데, (물론 영어로는 다르게 표현했다) 내 마니또가 된 친구가 내게 나시족 상형문자로 축복의 메시지가 적힌 액자를 선물해 주었다. 다행히 그건 내가 아직 엄마가 몇 번이고 버리시려는걸 막아내며 잘 갖고 있다.



이 사진은 다리역 입구에서 바라본 다리 신시가지 중심거리의 야경이다. 다리에서 찍은 사진은 이거 한 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다리 시내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이 곳 다리역에서 야간열차(침대칸)를 타고 쿤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쿤밍에 도착해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칭다오로 돌아왔다. 칭다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저녁이었다. 


p.s. 황당하게도 이 때 기차에서 찍은 사진도 없다. 찍지도 않은 것 같다. 이 때 우린 기차에서 소등시간 전까지 같이 노래도 부르고(연례 학교행사였던 음악축제를 준비하는 연습이었다.) 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중국에서 침대칸 열차를 탄 것은 2001년 봄 수학여행 중에 베이징→칭다오 구간, 2004년 봄 수학여행 중에 다리→쿤밍 구간이었고,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4년 봄 가족여행 중 시안→핑야오 구간 등 총 세번이었다. 다행히 올해 가족여행을 하면서 기차 사진을 충분히 남길 수 있었다. 나중에 여행기를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제는 나도 모든 사진의 소중함을 알기에 저런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 한다.



[중국] 윈난성(운남성), 2004년 4월 I
[중국] 윈난성(운남성), 2004년 4월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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