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동방의 금수강산

서해 찬가


우리 외가는 서산, 태안이다. 90년대 사람들이 동해안 밖에 모를때 우리 식구는 여름을 서해안에서 보냈다. '청포대'에서 여름을 나고 학교로 돌아갔던 어느 학기, 방학일기를 검사하던 선생님은 "청포대가 아니라 경포대란다"라며 본인이 가보지도 않은 해수욕장 이름을 마음대로 고쳐버렸다.

나의 사춘기는 서해 바로 건너편 칭다오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황해를 서해라고도 하듯이 중국에서는 동해라고도 부른다. 해마다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다녔지만 도로명 주소는 늘 '동해로 XX호' 였다. 머무는 집마다 바다가 보였다. 학교는 집보다 더 했다. 교실 창문 밖은 바다 반 하늘 반이었고, 초여름 태풍이 오면 운동장까지 바닷물이 넘어왔다. 타고난 아침 잠만 좀 적었다면 매일 자전거를 타고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었을텐데.

애초에 공군보다 해군을 더 동경해서 였을까, 공군 장교로서의 군생활 3년을 보령(대천) 바닷가에서만 줄곧 보내다 간다. 보령에 있는 공군 방공포병 부대만 세 개, 그 중 두 부대에 있다 간다. 장교 중에서는 최초의 인물이다. (지금 부대에서 전역하는 역사상 최초의 장교이기도 하다.) 외갓집에서 최대한 가까이에 있고 싶었고, 바다를 보며 사는게 좋기도 하고 그랬다. 약간 허망한 생각도 조금 개입되어 있었는데, 여기로 처음 올때만 해도 우리 부모님 그리고 당시의 여자친구가 여기서 바로 바다 맞은편 칭다오에 아직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문자를 보내면 서로의 마음이 더 잘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맹랑한 상상...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 동네 두 부대에 걸쳐서 있다가만 가게 될 줄은, 나말고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요새 평소에 내가 바다를 볼 일은 당장 업무가 너무 지겨워져서 바람 좀 쐬고 싶어 사무실 밖으로 나왔을때 아니면 풍랑주의보가 발령돼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때 정도 밖에 없다. 여기서 바다를 볼 날은 한 분기도 채 안 남았지만, 그래도 나한테 바다하면 먼저 떠오르는건 서해 밖에 없으니까... 언젠가는 또 다시 서해를 보며 사는 삶을 다시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주 어릴때 진작 깨달은 사실인데, 해는 떠오를 때보다 저물 때가 훨씬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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