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러브 인 아시아

[중국] 샨동성 칭다오(산동성 청도), 2004년 7월

이 글은 사실 여행기라고 할 수 없다. 이 글을 포함해서 내가 이 블로그에서 칭다오에 대해 쓸 글은 여행기가 될 수가 없다. 나는 한 번도 칭다오를 '여행'해 본 적이 없다. 나는 2001년 3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칭다오에서 거주했다. 나의 부모님은 그 이후로 2014년 4월까지, 9년을 더 칭다오에 머물러 계셨다. 그 동안 칭다오는 내게 집이자 사실상의 고향이었고, 그래서 나는 칭다오를 여행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른 일이다. 지금의 나 같았으면, 어딜 가든지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이것저것 많이 사진으로 남길 것이다. 그런데 약 5년 동안 칭다오에서 사는 동안에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지금 후회가 된다. 꼭 이 블로그에다가 글을 쓰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내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낸 나의 고향, 오늘날의 나를 만든 도시 칭다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달랠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행 목적 말고는 칭다오에 방문할 마땅한 근거가 없다. 가더라도 갈 '우리 집'도, '친구 집'도 없어서 여친 집도 없고 묵을 호텔을 잡아야 하고, 선생님도 거의 다 바뀌어버렸고 나를 아는 후배도 없는 모교를 방문할 일도 없어서 진짜 갈 데가 관광지 밖에 없어져 버린, 정말로 순수한 여행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더 가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현재로서는. 같은 시간과 돈이라면 내가 아직 못 가본 곳을 먼저 가야 하니까. 그래도 나중에 내가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면, 바쁜 와중에 짧은 휴가를 내서 어디론가 떠나 쉬고 싶을 때,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도시 칭다오를 택해서 머무르다 오고 싶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많이. 칭다오는, 어쨌든 내 고향이니까.


다음 사진들은 2004년 7월의 어느 주말 오후, 칭다오 중심부(시남구) 신시가지의 5·4광장 일대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칭다오는 1900년을 전후하여 독일의 조차지로서 개발되기 시작한 도시라서, 시내 중심인 시남구가 20세기 초반에 독일에 의해 건설된 구시가지와 21세기 개혁개방의 시대에 무서운 속도로 개발된 신시가지로 분리되어 있다. 굳이 서울에 비유하자면 구시가지는 종로, 신시가지는 강남 일대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사는 동안에 우리 가족은 줄곧 이 신시가지에서 살았다. 사실 칭다오 시 중심에서 대부분의 한국인 및 외국인은 이 신시가지와 조금 더 외곽(노산구)으로 벗어난 고급주택단지에 몰려 산다. 물론 칭다오 전체로 보자면 그건 외곽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건 한국과 많이 다른 중국의 특수한 행정구역, 도시구조상의 이유 때문인데, 시 중심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은 빠져나가야 하는 진짜 외곽(성양구)에도(한국 수도권에 비유하자면 거의 용인이나 동탄 쯤 되는 수도권 신도시지만 중국은 여전히 시 경계 안이다) 한국인이 참 많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위해 역유학 혼자 자취하는 동안 부모님은 이 교외로 이사가셔서 5년 넘게 사셨다.



중국 대도시의 광장에는 연날리기가 끊이지 않는다. 칭다오 신시가지의 5·4광장 역시 마찬가지.



사람 참 많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중국 대도시 광장은 늘 이렇다고 보면 된다.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군인도 보인다. 저 멀리 칭다오맥주(青岛啤酒) 빌딩이 보인다. 그 앞의 분홍빛 저층 건물들과 옆의 비슷한색 고층 빌딩들은 다 고급아파트 단지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사진 왼편에 아주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들이다. (한 건물이 아니다!) 칭다오 권력의 핵심, 칭다오 시정부(시청)와 중국공산당 칭다오시 중앙위원회 건물이다.



음... =_=;; 이 사진에서 보이는 분홍빛 빌딩, 그 옆에 낮은 세 쌍둥이 건물 역시 죄다 아파트이다.




5·4광장에서 서쪽을 향해 바라본 모습. 지금까지 사진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5·4광장은 바닷가에 있다. 시의 중심인 시남구 자체가 바다에 둘러쌓여 있는, 칭다오의 끄트머리다. 사진 저 편에 흐릿하게 보이는 공사판 조선소 일대는 이 때로부터 4년 후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요트경기장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이다. 사진 오른쪽 구석에 멀리 보이는 빨간 소용돌이 모양의 구조물이 바로 5·4광장의 중심에 있는 '5월의 바람(五月的风)'이다. 나는 칭다오에서 살 때부터 줄곧 이걸 '똥'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부모님과 나는 칭다오에 대한 이야기할 때 '5·4광장 똥'이라고 표현한다. ㅋㅋ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내려오면 음악광장이라는 별개의 광장이 있다. 이 사진 중간 쯤에 잘 보면 베토벤의 얼굴 조각상이 보인다. 나름 음악광장이라고 또 그렇게 해놓았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복장(인민복)을 보아하니 심영? 아마 마오쩌동 시절의 혁명음악가 쯤 되는 양반인것 같다. 깨알같이 그 자세를 따라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사실 중국에서는 인민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공산당원의 상징도 아니다. 저 옷을 처음 입은 쑨원의 호를 따 중산복이라고 한다. 실제로 쟝졔스도 입었고.)



조선소 부지 재개발을 거쳐 올림픽 경기장 단지가 건설되고 지하철도 생겨난 지금은 아마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쇼핑몰, 백화점, 명품관 얘기이다. 내가 처음 '칭다오의 강남'으로 이사갔을 때는 일본계 '저스코'와 프랑스계 '까르푸', 두 대형마트 밖에 없던 동네였는데 나중에는 이런 명품관이 우후죽순 생겨나더라. 이 명품관 로비에는 BMW와 KIA의 콜라보 공동 프로모션이 있었는지 Z3와 오피러스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이 명품관에 별도로 포르셰 매장도 있었는데, 차량 한두대만 진열해 놓았는데도 그게 매주 바뀌더라. 알고 봤더니 그렇게 포르셰를 사가는 사람들이 끊기지 않고 매주마다 있다는 것... ㄷㄷㄷ




횡단보도에서 생각없이 사람들을 따라가려다 큰일 날 뻔 했다. 지금은 또 모르겠지만 당시까진 워낙에 흔한 일이었다. 앞에 보이는 JUSCO는 우리 가족의 식량을 책임졌던 일본계 대형마트.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5년 동안 이사를 네번 다녔는데(...) 그래도 이 저스코 주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저스코 뒤 고층빌딩은 홀리데이 인/크라운 플라자 호텔. 당시까지는 샹그리라 호텔, 하이티엔(海天) 호텔과 함께 칭다오의 최고급 호텔 빅3였는데 지금은 그런 호텔이 훨씬 더 늘어나서 어떤지 모르겠다. 올림픽 경기장 단지에 인터컨티넨탈도 생겼던데. 그런데 그 경기장이 이 사진에 저스코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길 건너편이다. 여러가지로 칭다오 신시가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동네.



위 사진과 같은 사거리이다. 저스코 쪽으로 넘어와서 다시 왼쪽으로 튼 방향이다. 왕복 10차선 도로라도 무단횡단은 일도 아니다. 길 건너편에 옷을 걷어올리고 상의실종 배를 드러낸 아저씨도 보인다. 저때까진 칭다오에서 정말 흔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나도 집에 들어갈 때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옷을 벗고... 지금은 모르겠다. 오른편의 빌딩은 칭다오 국제금융센터 건물인데, 중국 건설업계의 종특인지 몰라도 외벽 마무리까지 다 해놓고서 내부 마무리, 개장을 하는데 한 4년은 더 걸렸다. 왜 그딴 식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칭다오에서는 이 빌딩만 그런게 아니더라.


번외로... 이건 다른 날 찍은 사진이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던 중국 식당이다. 여기 조개탕과 물만두는 참 예술이었는데. 칭다오에서는 저렇게 앞만 가린 앞가림은 하네 옷인지 앞치마인지 모를 옷을 입고 다니는 애기들이 정말 많다. 자매품은 엉덩이 부분만 뻥 뚫린 옷도 있다. 길에서 아무데서나 볼일을 볼 수 있게 위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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