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바다/그깟 공놀이

[축구] to Leo Messi

 

to Leo Messi

내가 당신을 처음 보았던 때를 기억해요. 2005년 청소년 월드컵. 하늘색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휘젓는 조그만 당신을 본 순간, 역시 작은 키의 알렉스 델피에로를 나의 영원한 영웅으로 동경하고 있던 내게 당신은 제 2의 알렉스가 되어 주리란 것을 강하게 직감하도록 만들었죠.

2010년 쯤엔 당신의 얼굴이 그려진 하늘색 아디다스 셔츠를 하나 사기도 했어요. 하늘색, 아디다스, 메시.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또 이렇게 모일 수 있는건지....

2011년, 24살에 난 드디어 첫사랑을 만났어요. 그런데 호날두와 외질을 좋아하는 레알 마드리드 팬이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지만, 그 남동생은 또 라모스, 벤제마 팬이라네요. 나는 내 연인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주고 어떤 소원이든 들어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 대신 호날두를, 바르사 말고 레알을 좋아할 수는 없었어요. 난 당신과 바르사를 포기하느니, 앞으로 평생을 함께하려 했던 연인과 평생 동안 우리만의 엘클라시코를 벌이며 살아가리라고 다짐했었어요.

1년 후 2012년 말에 나는 첫사랑과 헤어졌어요. 그 덕분에 당신에 대한, 바르사와 아르헨티나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 깊어만 가네요. 당신이 엘클라시코에서 골을 넣고, 호날두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받고, 빅이어나 월드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나를 버린 호날두 팬 내 옛 연인에 대한 나의 승리와 동일시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참 희한하죠. 2013년부터 당신과 바르사는 호날두와 레알에 살짝 밀리더라구요. 나는 그걸,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요. 당신의 우월함을 증명해주세요. 당신을 동경하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세요. 어떻게든 호날두에게, 레알에게, 절대, 절대로 지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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